12월 30일 일요일 아침 일찍 문득 눈이 떠졌습니다. 다시 잠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왜인지 쉽게 다시 잠들지 못하겠더군요. 침대에서 몇 번을 꼼지락거리다가 일어나 올 한해를 다시 돌아보며 어떤 것들을 배웠고, 어떤 것들을 내년에 더 잘 해야될지 고민해보았습니다. Facebook과 Twitter 타임라인을 쭉 훑어보면서 1년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참 바쁘고 정신없이 보낸 2012년이었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아 감사했던 한 해였습니다.
머리 속에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하나씩 말로 풀어 쓰다보니 이 생각들을 오랜만에 블로그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올 한해 배웠던 내용들을 차분히 정리하면서 2012년의 저와 저희 회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1. 서비스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스타트업은 기본적으로 '서비스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똑똑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우리가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걸 느끼는 순간 여지없이 서비스를 이탈하고 맙니다. 모바일 메신저라면 응당 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집중해야하고, 커머스라면 쉽게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찾고 안심하며 배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게임은 재미있어야 하고, 음식점은 음식이 맛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제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모든 마케팅, 영업, 제휴 등은 무용지물이고 반짝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그칠 뿐입니다. 우리 서비스가 가진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에 집중해 나가는 것이 리소스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2. 한국에서의 성과가 Globalization의 거름이 된다.
올 한해 Between의 Globalization 준비를 위해 여러 나라를 바쁘게 오갔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각양각색의 사람과 기업들을 만났고, 운 좋게도 좋은 파트너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좋은 파트너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레퍼런스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본진(?)에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에만 멀티(?)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 같습니다.
해외 진출을 염두해두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특히 Consumer Service를 하는 기업이라면, 한국에서 먼저 성과를 만들고 그걸 지렛대 삼아 뻗어나가는게 좀 더 수월한 것 같습니다.
미국 Launch Conference에서 이스라엘 대통령이 Between 부스를 방문했을 때
3. 스타트업은 폼 잡는 마케팅보다 NGD(노가다) 마케팅의 ROI가 훨씬 높다.
2012년 동안 진행했던 마케팅 활동을 쭉 돌아보니 폼 잡고 돈을 쓰면서 진행했던 마케팅 보다는, 깊은 고민을 하고 우리의 손떼 묻은 마케팅 활동의 ROI가 훨씬 높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제품이 무엇인지, 우리의 타겟 고객이 어디있는지, 우리 고객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은 우리 회사가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케팅 활동을 위해 고객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하는 과정들이 회사의 DNA 안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마케팅도 결국 확률의 게임이고 그 성공 확률을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회사 내에 쌓인 고객에 대한 insight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올해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중 하나였던 Between Box
4. 사람과의 관계는 그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에 기인한다.
올해도 역시 참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할 줄 알고, 조건없이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했을 때 좋은 인연이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Give & Take & Remember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 Give & Give & Forget 하는 사이일수록 깊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5. 멀리 보는 시각과 가까이 보는 시각의 균형이 중요하다.
회사를 경영하며 제가 가장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입니다. 회사의 미래를 멀리 보고 큰 줄기의 전략을 구상한 뒤 그걸 실행함에 있어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써야 하는데, 한 쪽에 치우쳐 틀린 의사결정을 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멀리 보는 것에만 신경을 쓸 때는 일을 실행할 때 디테일을 챙기지 못한 적이 있었고, 당장의 일을 실행하는데 집중할 때는 회사의 큰 전략과 비전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때마다 주변의 멘토분들과 동료들이 저를 다시 균형점으로 데려오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경영을 하는 사람의 의사결정은 회사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멀리 보는 시각과 가까이 보는 시각의 균형을 잃지 않아야겠습니다.
6. 현실을 인정하되 큰 꿈을 꾸는 것이 스타트업의 생존방식이다.
스타트업은 내부적으로 리소스가 부족하고 돈도 많이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인정해야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잘 정리하여 리소스를 배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큰 꿈을 꾸고 함께 Vision을 공유하는 것이야 말로 스타트업이 Motivation을 잃지 않고 달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 역시 배웠습니다.
스타트업은 꿈을 먹고 사는 조직인 것 같습니다. 내부 구성원들이 큰 꿈을 꾸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그림을 그리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목공예를 취미로 하시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제게 주셨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
제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는 글귀입니다. ^^
7. 준비가 안된 상태로 사람을 함부로 많이 늘리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저희가 이번 여름에 인턴 친구들을 많이 늘린 적이 있습니다. 아직 회사의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데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자 우왕좌왕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을 배분해야될지 명확한 기준이 없었고, 그 사람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깜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인력을 모아놓고도 그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을 겪고나서 준비가 안된 상태로 사람을 늘리게되면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늘릴 때는 잘 준비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신중한 선택을 해야될 것 같습니다.
8. 작은 실패가 쌓이면 노하우가 된다.
올해에 작은 실패들도 참 많이 했습니다. 제품을 개발하는 부분에서, 팀 간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부분에서, 마케팅을 하는 부분에서, 자금을 집행하는 부분에서도 작은 실패들을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실패들이 하나씩 쌓이고나니 노하우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실패의 원인에 대해 파악해나가며 회사가 조금씩 단단해짐을 느꼈습니다. 작은 실수와 실패에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그 원인에 대해 냉정히 파악하고 두 번 다시 그러한 실수를 만들지 않을 때 회사는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9. 개인의 성장 속도가 기업의 성장 속도 보다 빨라야 기업이 지속 가능하게 성장한다.
제가 작년 말에 송년회를 하며 했던 말인데, 올해에도 역시 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내부에 있는 구성원들이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배워나갈 때, 그 힘을 바탕으로 기업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내부 구성원들의 성장 속도가 늦어져 회사가 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결국 회사의 성장은 가속을 잃어버린채 정체되거나 멈출 것입니다. 따라서 내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자극하고 서로간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습니다. 좋은 사람들끼리 모여 상호간에 좋은 자극을 주고 받고 그를 통해 개개인이 성장해나간다면 회사도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0. 배움은 실행을 통해 증명할 때만 의미가 있다.
위의 내용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자 저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많은 시행착오과 경험을 통해 얻은 배움들은 실행을 통해 증명될 때만 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로만,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결과를 만들어낼 때 그 배움이 의미를 갖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항상 염두해두고 위에 적어놓은 배움들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욱 멋진 결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내년에도 많은 삽질이 예상됩니다만.. ^^)
내년에는 위의 배움을 바탕으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2012년은 저나 저희 회사에서 참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크게 성장하였고, 좋은 사람들과 멀리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의미있는 한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올 한해동안 고마웠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저희 회사를 믿고 함께 일을 하고 계신 저희 파트너사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직 젊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회사이지만 저희를 항상 신뢰해주시는 투자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고 좁은 시야에 갇히지 않도록 늘 좋은 말씀해주시는 멘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가는 길을 한 발짝 먼저 걸어보시고 실질적인 도움과 조언을 해주시는 업계 선배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기쁘거나 즐거울 때, 외롭거나 지칠 때 옆에서 함께 웃고 울어준 업계 동료분들과 많은 기업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좋은 소식들이 있을 때 언제나 좋은 기사로 저희 회사에 대해 소개해주신 많은 기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직 많이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저희 서비스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Between 유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저를 믿고 저와 함께 회사의 Vision을 이뤄가고 있는 우리 VCNC 식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작은 벤처기업에서의 도전을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회사 식구들의 어머니,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2013년에는 미래를 조금 더 길게 내다보고,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업가는 결국 시장에서의 결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성과와 결과로 가치를 증명하는 기업가가 되겠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